언박싱(Unboxing)의 손맛은 느끼고 싶지만 얇아지는 통장 잔고가 걱정되는 현대인들을 위한 '빈 택배 상자 정기 구독 서비스'가 유통 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가상의 구독 플랫폼 '지름제로'가 출시한 이 서비스는 가입자가 지정한 주기에 맞춰 내용물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빈 골판지 상자를 문 앞까지 배송해 주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구독 등급에 따른 상품 구성도 다채롭다. 일반 '실속형' 구독자에게는 규격화된 황색 우체국 상자가 배송되며, '프리미엄형' 가입자에게는 에어캡 완충재가 과도하게 들어있어 뜯는 손맛과 터뜨리는 재미를 극대화한 상자가 배달된다. 특히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정교하게 인쇄된 송장이 붙어 있는 '소셜 인증형' 패키지는 인스타그램 업로드용으로 젊은 층 사이에서 품절 대란을 겪고 있다.
소비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번 열풍이 현대인들의 '소유욕 소진 현상'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학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택배에서 얻는 행복의 90%는 칼로 테이프를 가르고 상자 날개를 펼치는 최초 3초에 집중되어 있다'며, '내용물을 과감히 생략하고 이 도파민 분출 구간만 저렴하게 판매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쓰레기 배출량 증가 우려에 대해 업체 측은 영리한 회수 정책을 내놓았다. '지름제로' 관계자는 '새벽에 새 빈 상자를 배송하면서 전날 배달한 빈 상자를 도로 수거해 가는 순환식 시스템을 도입했다'라며, '이웃들에게는 매일 무언가를 사는 활발한 소비자로 보이면서도 실제 지출과 쓰레기는 제로에 수렴하는 완벽한 친환경 허세 라이프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